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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예약 전날 밤에 잠을 못 잤다는 분들, 생각보다 정말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치과야 다들 좀 싫어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20년 넘게 환자분들을 곁에서 보다 보니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치과 공포증은 단순한 겁쟁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료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하거나, 아프지 않은 처치에도 구역질을 반복하는 분들을 직접 봐왔습니다. 이 글은 그 분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치과 공포증의 진짜 뿌리, 트라우마를 먼저 봐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켜본 바로는, 치과 공포증이 있는 분들 대부분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습니다. 막연히 무서운 게 아니라, 과거에 구체적으로 아팠던 기억, 예고 없이 기구를 들이밀었던 경험, 충분한 설명 없이 진행된 치료 같은 것들이 쌓여서 공포로 굳어진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분들은 사실 가장 빠르게 호전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기억이 잘못됐다는 걸 '몸으로' 새로 경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느 중년 여성 환자분이 계셨는데, 수십 년간 치과를 한 번도 못 가셨고 연세에 비해 남아있는 치아가 몇 개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음식을 못 드시는 고통이 더 커지자 '이번엔 꼭 치료받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오셨고, 결국 치료를 끝까지 마무리하셨습니다. 이 사례가 저한테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치과 진료 과정에서 환자분이 느끼는 공포의 상당 부분은 '불확실성'에서 옵니다. 다음에 뭘 할지 모르고, 언제 아파질지 모르고, 지금 이 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그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통증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실제로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는 같은 자극도 통증으로 덜 인식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NCBI, 불확실성과 통증 지각 연구).
그래서 저는 치과 공포증이 심하신 분이 처음 오시면 체어에 눕히지 않습니다. 그냥 앉아서 엑스레이 사진만 갖고 먼저 이야기를 나눕니다. 뭐가 무서우신지, 어떤 나쁜 기억이 있으신지부터 듣는 거죠. 치과 기구인 에어시린지(air syringe), 즉 바람과 물을 사용하는 기구조차도 미리 "지금 바람 나옵니다, 물 나옵니다" 하고 하나하나 말씀드리며 진행합니다. 이게 사소해 보이지만, 이걸 하느냐 안 하느냐는 환자분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무통마취부터 의식하진정법까지, 공포증 단계별 접근법
치과 공포증 얘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수면치료 하면 되지 않나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도 그 선택지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면치료를 처음부터 권유하는 방식이 오히려 공포증을 장기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의존도만 높이는 경우를 여러 번 봐왔습니다.
치과에서 흔히 '수면마취'라고 부르는 시술의 정확한 명칭은 의식하진정법(conscious sedation)입니다. 여기서 의식하진정법이란 환자가 완전히 잠드는 전신마취와 달리, 의식은 유지하면서 진정제를 투여해 불안과 긴장을 낮추는 방법을 말합니다. 완전히 기억이 없는 게 아니라 몽롱한 상태에서 진료를 받는 것에 가깝습니다. 치과 치료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매번 의식하진정법에 의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비용 면에서도 한계가 있습니다(출처: 대한치과의사협회).
그래서 저는 공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분들께는 무통마취 시스템을 먼저 경험해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통마취란 컴퓨터가 마취액의 주입 속도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수(手)주사보다 통증이 훨씬 적습니다. 손으로 주사를 놓을 때는 의사가 아무리 천천히 신경을 써도 속도 조절에 한계가 있는데, 컴퓨터 마취기기는 그 한계를 기계적으로 극복합니다.
제 경험상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시술이 비교적 간단한 부위부터 시작해서 '치료가 이렇게 안 아프구나'를 먼저 체감하는 것입니다. 공황장애가 동반되어 있거나 사지가 떨릴 정도의 극심한 공포를 가진 분들은 의식하진정법을 먼저 사용하고, 이후 신뢰가 쌓이면 점진적으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결국 치료를 이어가려면 본인의 의지가 중심이 되고, 의료진은 그 의지를 최대한 지지해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과 공포증이 있으면 그냥 수면치료 받으면 안 되나요?
A. 수면치료, 즉 의식하진정법은 분명 유효한 선택지입니다. 하지만 치과 치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매번 의식하진정법에만 의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공포의 근본 원인인 과거 트라우마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과정을 병행하지 않으면, 공포증 자체는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Q. 무통마취는 일반 마취랑 뭐가 다른 건가요?
A. 무통마취는 컴퓨터가 마취액 주입 속도를 자동 제어하는 방식으로, 속도 불균형으로 생기는 통증을 줄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수주사보다 통증이 적고, 여기에 도포마취를 함께 사용하면 주사 바늘 감각 자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Q. 치과 공포증 환자라고 말하면 치과에서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A. 제가 현장에서 보기에 치과 공포증은 매우 흔합니다. 오히려 미리 말씀해 주시면 진료 속도 조절이나 설명 방식 등을 맞춤형으로 조정할 수 있어 더 편하게 치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숨기시는 것보다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는 게 훨씬 낫습니다.
Q. 공황장애가 있어도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A. 받을 수 있습니다. 공황장애가 동반된 경우에는 의식하진정법을 먼저 활용해 진료를 시작하고, 이후 신뢰가 쌓이면 점진적으로 진정제 의존도를 낮춰가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이런 방식에 익숙한 치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치과 공포증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수십 년간 충치가 신경관까지 진행되어 며칠씩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서도 치과 문을 못 열었던 분들을 저는 직접 봤습니다. 그 공포가 얼마나 깊은지, 현장에 있어봐야 압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치료를 받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의지가 서면 나머지는 의료진이 최대한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환자가 많아 바쁜 곳보다는 천천히 설명해 주고 속도를 조절해 줄 수 있는 치과를 선택하는 것, 그게 현실적으로 치과 공포증 극복의 첫 번째 실천입니다. 평생 고통받으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