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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서 일하다 보면 환자분들이 의외로 자주 꺼내는 질문이 있습니다. "판매하는 치약은 없어요?" 하는 건데요. 치과에서 추천하는 치약이라면 뭔가 검증된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기대가 이해됐지만, 직접 성분들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치약 앞면의 광고 문구보다 뒷면의 성분표가 훨씬 솔직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올바른 치약 고르는 법과 필수 성분 확인
마트 진열대 앞에서 치약을 고를 때, 저도 한동안은 앞면에 적힌 문구를 먼저 봤습니다. '잇몸 강화', '미백 효과', '충치 예방' 같은 말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니까요. 그런데 치과에서 일하면서 성분표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더니, 앞면 문구와 실제 성분 사이에 꽤 큰 간격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충치 예방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성분은 불소(Fluoride)입니다. 불소란 치아 표면의 에나멜을 강화하고 산성 환경에서 치아가 녹는 속도를 늦춰주는 무기 화합물로, 충치 예방 치약의 실질적인 주성분입니다. 치약 성분표에 '1불소 인산 나트륨(MFP)' 또는 '불화나트륨(NaF)'으로 표기되어 있으면 불소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인용 치약 기준으로 허용 함량은 1,000~1,500ppm이고, 충치 예방 기능을 강화한 고불소 치약은 1,450ppm까지 들어 있습니다.
치위생과 수업을 들으며 불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치약을 고를 때 저는 고불소치약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치약 안에 불소가 포함되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사실을 치과에서 일하게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불소가 안 들어간 치약을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울 정도로, 시중 치약의 대부분에 불소가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충치 예방'이라고 특별히 강조된 치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불소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충치 예방은 되는 셈입니다. 다만 충치가 자주 생기는 편이라면, 일반 치약 대신 1,450ppm에 가까운 고불소 치약을 선택하면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아이들은 치약을 삼키는 경우가 많아서 불소 과잉 섭취가 치아 발육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6세 미만 아동에게는 500ppm 이하의 치약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시린이 치약도 성분을 보고 고르는 게 맞습니다. 잇몸이 내려가면 치아 뿌리 부분이 드러나는데, 이 부위에는 에나멜이 없어서 상아세관(dentinal tubules)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상아세관이란 치아 내부 신경과 연결된 미세한 통로로, 이 구멍이 열려 있으면 차가운 자극이 신경까지 바로 전달되어 시린 느낌을 일으킵니다. 시린이 치약은 이 구멍을 물리적으로 막거나(질산칼륨, 염화스트론튬 계열), 신경 자체의 반응을 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센소다인 같은 제품 설명에 '2주 후부터 개선'이라고 명시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멍을 채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충치 예방 → 불소(MFP 또는 NaF) 함량 확인, 성인은 1,000~1,500ppm
- 시린이 → 질산칼륨 또는 염화스트론튬 성분 확인, 최소 2주 이상 사용
- 잇몸 케어 → CPC(세틸피리디늄클로라이드) 성분 확인, 세균 억제 기능
- 아동용 → 500ppm 이하 불소 치약 선택
과대광고 주의 및 미백 치약의 진실
인터넷 광고에서 어떤 치약 하나가 치석을 녹이고 잇몸을 재생시켜 준다는 문구를 봤을 때, 치과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고 공부한 바로는, 그런 치약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단하게 굳어진 치석은 치약으로 녹지 않고, 치과에서 스케일링으로 직접 제거해야만 합니다.
미백 치약의 작동 원리를 들여다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미백 치약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씁니다. 하나는 연마제(abrasive)로 치아 표면의 착색을 물리적으로 갈아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과산화수소(hydrogen peroxide)로 치아 내부의 어두운 색소를 산화시켜 밝게 하는 방식입니다. 연마제란 미세한 입자가 치아 표면을 문질러 커피나 담배로 생긴 착색막을 벗겨내는 성분입니다.
문제는 연마 방식의 미백 치약이 시린이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중요한 포인트인데, 시린이가 있는 분이 연마제가 많이 든 미백 치약을 쓰면 이미 얇아진 에나멜층이 더 빨리 닳아서 시린 증상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치약의 마모도를 RDA(Relative Dentin Abrasivity, 상대적 상아질 마모도) 수치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RDA 0~70이면 마모도가 낮은 편이고, 150~250이면 치아가 상당히 많이 갈리는 수준입니다(출처: 미국치과협회(ADA)). 국내 치약에는 이 수치가 표시되지 않아서, '미백 효과'나 '연마제'를 강조하는 제품일수록 마모도가 높다고 유추하면 됩니다.
과산화수소 성분이 든 치약은 농도가 낮으면 효과가 거의 없고, 농도가 높으면 잇몸 자극과 구강 점막 손상, 심한 경우 치수염 증상까지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농도의 과산화수소 치약은 일반 마트에서 팔지 않고 치과에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정말 눈에 띄는 미백 효과를 원한다면 치약보다 치과 미백 시술이 훨씬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한 가지 더, 치약 광고에서 '플라그 제거'와 '구취 제거'를 특별한 기능처럼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보기엔 이건 양치질 자체의 효과입니다. 치약으로 양치를 하면 플라그가 제거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게 그 치약만의 특별함은 아닙니다. 구취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취를 억제하는 성분으로 CPC(세틸피리디늄클로라이드)나 에센셜 오일류가 쓰이는데, CPC란 구강 내 세균의 세포막을 파괴해 세균 수를 줄여주는 항균 성분입니다. 그러나 충치, 치석, 잇몸 질환이 근본 원인이라면 치약만으로는 구취를 잡기 어렵습니다. 향수를 뿌린다고 땀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약은 비싼 게 더 좋은 건가요?
A. 일반적으로 비쌀수록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 경험상 치약은 가격보다 성분이 중요합니다. 불소 함량과 자신의 구강 상태에 맞는 기능성 성분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가격을 보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입니다. 의약품안전나라 사이트에서 제품명을 검색하면 성분 정보를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시린이 치약과 미백 치약을 같이 쓰면 안 되나요?
A. 함께 쓰는 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시린이 치약은 상아세관을 막아 시린 증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미백 치약의 연마제는 치아 표면을 갈아내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두 기능이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시린이가 있다면 미백 치약 사용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Q. 고불소 치약을 쓰면 충치가 안 생기나요?
A. 고불소 치약이 충치 예방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충치가 아예 안 생기는 건 아닙니다. 치약보다 양치질 방법과 횟수가 더 중요합니다. 음식물 찌꺼기가 치석으로 굳는 데 약 12시간이 걸리므로, 하루 최소 두 번 이상 올바른 방법으로 닦는 것이 어떤 치약보다 먼저입니다.
Q. 잇몸 치약을 쓰면 치석이 없어지나요?
A. 잇몸 치약은 치석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CPC 같은 항균 성분이 잇몸 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의 수를 줄여 염증을 예방하는 보조적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미 굳어진 치석은 치과에서 스케일링으로 직접 제거해야 하고, 치약은 그 이후 관리를 돕는 보조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결론
치과에서 일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치약은 보조제입니다. 마모성 연마제가 많은 미백 치약만 피하면, 나머지는 뒷면에서 불소 함량 하나만 확인하고 골라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린이가 있다면 질산칼륨 계열 성분이 든 전용 치약을 2주 이상 꾸준히 쓰면 됩니다.
광고 문구에 현혹되기보다 하루 두 번 제대로 된 양치질, 그리고 정기적인 치과 방문이 어떤 치약보다 치아를 오래 지키는 방법입니다. 제가 직접 써보고 확인한 것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